"시작이 반 "이다 라는 말이 있지만
대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시작은 곧 한구간의 끝" 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그렇게 19구간은 시작 되었으니
시작과 동시에 한구간을 끝낸 셈이다
봄바람은 왜그리 더 살속으로 파고 드는지
한겨울보다도 새봄의 추위가 더 춥게 느껴지는 요즈음
분주한 하루를 마무리 하고
우린 그렇게 대간길에 올라섰다
봄철 산불방지로 인하여
지리산 만복대구간과,덕유산 구간을 먼저 타다보니
오늘 작점고개는
한달만에
다시 찾은 셈이다
대간을 하면서 유독 날씨 복이 많은 3기팀!!!
오늘도 작점고개에 도착 했을때
새벽 밤하늘은 초롱초롱 별들로 반짝이며
가녀린 초승달이지만
우리를 반기며 환하게 비춰주는 그 불빛속에
비춰지는 우리들의 모습은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기분 좋은 첫출발이다
작점고개에서 대간길은 시멘트길을 따라 걷기도 하다가
산길로 접어 들었다가
다시 시멘트길로 또 산길로 이어지는 조금은 이상한 대간길
그래도 그것이 정상의 마루금이라고...
작점고개에서 그렇게 3시간여 걷다보니
추풍령 고개에 도착이다
"추풍령"은
높이 221 m.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분기점으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며,
예로부터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지금도 경부선 철도의 추풍령역이 있고,
4번 국도가 통하며, 경부고속도로의 중간점으로 추풍령휴게소가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군사적 요충이 되어, 의병장 장지현(張智賢)이 의병 2,000명을 이끌고
왜군 2만 명을 맞아 분전 끝에 물리쳤고(1차 전투), 다시 밀려온 4만 명의
왜군에게 패하여 장렬히 전사한 곳이란다.
갖가지 장승의 표정들!!
가만히 들여다 보니
활짝웃는 표정은 하나도 없넹
이왕이면 활짝웃고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장승을 감상하며 잠시 머물다
다시 출발이다
추풍령에서 도로길 따라 약 5분정도 걷다보면
우리식당 간판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대간길은 좌측길로
대평 지하도를 따라서 걷게된다
대평지하도에 들어서면
이런 간판이 보이는데
아마도 대간꾼들이 많이 알바를 한곳인가 보다
백두대간표지기가 양측길로 되어 있어
무심히 가다보면
우측길로 많이 갈것 같은곳
꼭 이곳에서는
좌측길을 사수하라
대평지하도 불빛이
그윽하니 왠지 정겹다
반사경에 비춰진
내모습을 담아 보려고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모습을 역으로 담아주신
노래언니 탱큐여요
추풍령에서
눌의산 정상까지
1시간 40분여동안 정말 빡세게 올라온것 같다
에공~~
힘들어라
게슴츠레한 나의 눈빛이
힘들었음을 말해주고..
오늘 대간길에는
봉우리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되는데
정상석의 모양들이 거의 비슷했음을
장군봉은 정상석은 없고
대간꾼의 손에 의해
만들어 졌을
표지판만이 뎅그렁하다
아침의 공기가 이제는 그렇게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봄은 봄인가 보다
봄의 느낌을 그렇게 온몸으로 받으며
눌의산에서 1시간 20분여
걷다보니 가성산에 도착이다
어느덧 날도 밝아오고
우리는 가성산에서
아침을 먹는다
대부분은 간식으로 한끼를 해결하지만
늘 정성으로 밥을 싸오는 천리향 언니!!
언니는 저 밥 힘으로 대간길을 걷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린 이구동성으로
천리향님은 밥이여~~
가성산에서 아침을 먹고
2시간여 만에 괘방령에 도착이다
"괘방령"은
「경상북도의 대항면 복전리와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공수리를 잇는 고개이다.
괘방령은 백두대간에 위치한 고개로, 황악산과 가성산 사이에 있으며,
괘방령 정상은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계 역할을 한다.
고개 남동쪽의 김천 쪽으로 흐른 물은 직지천을 지나 감천을 흘러든 뒤 낙동강에 합류하고,
북서쪽의 영동 쪽으로 흐른 물은 어촌천이 되어 초강천으로 흐른 뒤 금강에 합류한다.
현재는 906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고개였다고,
괘방령(卦方峴)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김산군의 서쪽 15리의 황간현의 경계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와 한자표기가 다르다. 『해동지도』와 『대동여지도』 등에는 괘방령(掛榜嶺)이라 적혀 있다.
.
또한 조선시대에 괘방령은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영남지방의
유생들이 많이 이용했다고 하며,
이웃한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는 속설 때문에
추풍령 대신 이 괘방령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괘방령은 방을 붙인다는 의미 이므로,
과거 합격과 연관시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우리가 괘방령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9시20분 경인데
일반산악회을 풀어 놓은 버스한대로
인하여 왁자지껄 분주하다
우리왈~~
그래 이게 정상인의 산행시간이지
우린 제정신이 아닌거지 하며
한바탕 웃으며
오늘의 최고봉
황악산을 향하여
일반산객들과의
분주함을 피하려
조금은 빠르게 진행해 본다
늘 오름길은
힘들다
괘방령에서
45분여의 오름길에
오를수 있었던
여시골산이다
여시골산(약 620m)은
향천리 묘내마을에서 서쪽으로 약 1.5㎞,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
윗어둔이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약 1.7㎞ 떨어진 곳에 있는 백두대간 줄기이다.
김천시와 영동군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능선은 여시골산 일대를 중심으로
추풍령과 괘방령이 있는
북쪽 지역에서는 700~800m 이하의 비교적 낮은 능선을 이루고,
여시골산 남쪽으로
지나는 지역에서는 1,000m 이상의 고봉과 800~1,000m 높이의 능선을 이룬다고 한다
또하나의 유래는
예로부터 여우가 많이 살아서 여시골이라 불린 골짜기의 배후에
있는 산이어서 여시골산이라고 한다고 한다
여시골산에서
10분여 내려서고 있노라니
여시굴을 만날수 있었는데
앞서가시던 황금송님께서
갑자기 누린내가 난다고 하셔서
나는 무슨 말씀인가 의아해 했더니만
여시굴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여시굴 앞에서
웃으시는 된비알님
너무 좋아하시는것 같어요
그굴안에
예쁜 여시라도 있는 거지요??
여시골에서
20분여 오르니
운수봉에 도착이다
시야를 가리어
조망은 없었던 운수봉을
지나 황악산을 향하여
다시 발걸음은 시작 되어진다
황악산 오름길로
그리 녹녹하지 많은 않다
그래도 한걸음 한걸음이
더해지다 보니
직지사 삼거리도 만날수 있었는데
직지사는 황악산 오름길에 좌측길로 하산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저멀리 직지사가 보인다
"직지사"는
「경상북도 금릉군 황악산 기슭에 있는 절. 신라 눌지왕(訥祗王) 2년(418)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선산군(善山郡)에 있는 도리사(挑李寺)와 함께 창건하였다.
선덕왕(善德王) 14년(645)에 자장율사(慈藏律師)와 경순왕(敬順王) 4년(930)에
천묵대사(天默大師)가 중수하였으며,
고려 태조 19년(936)에 능여대사(能如大師)가 대대적으로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 때에 모두 불타고
천불전(千佛殿) • 사천왕문(四天王門) • 자하문(紫霞門)만 남았다.
그 후 조선 선조 35년(1602) 중건하기 시작, 약 70여 년에 걸쳐 복원하였다.
직지사란 절 이름은 고려 때 능여대사가 자(尺)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측량하여 절을 중창하였기 때문에 붙여졌다고도 하고,
또 불경에 나오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이란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절은 국내 사찰 중 가장 오래 된 절의 하나로서
사명당(泗溟堂)이 이절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운수봉에서
황악산 오름길은
아직 잔설이 남아 있어
아이젠을 착용하고
올라야 했다
그렇게 운수봉에서 1시간 40분여의
오름길 끝에
오늘의 최고 봉우리 황악산에 도착이다
황악산(1,111m)은
추풍령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중간에 있는 산으로 이 일대에서 가장 높다.
황악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여시골산·괘방령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형제봉과·바람재로 이어진다.
산의 남쪽 기슭에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큰 사찰인 직지사(直指寺)가 있어
아마도 일반산객들이 찾는 이가 많은가 보다
오늘도
황학산 정상에는 산객들로
분주하기만 하고...
황악산 한쪽으로 우린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3기의 대표적인 상징물 또치님표 바나나를 펼쳐놓고 바나나 건배를 한다 그러한 외침이 활력소가 되어 잠시 고단했던 몸과 마음을 위로 받아본다네 천리향언니는 매구간 또치님의 바나나 덕분에 끝까지 힘을 내어 완주할수 있었다고 하네요 또치님 이 말은 천왕봉까지 계속 먹고 싶다는 야그인것 알죠??
우리들의 겉옷을 벗게 만드는
봄기운으로 가득한
대간길에
반가운 분을 우연히 또만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인연인가 보다
백두대간 북진을 15구간으로 진행하는
J3 회원님들을 지난번 지리산
만복대에 이어 또만나게 될줄이야
한구간에 약 60km 이상을 진행하는
일명 사람이 아닌 짐승들 이라나...
다시금 악수를 청하여
그들의 기를 듬뿍 받아본다
사랑의 마음으로 전해주는 잠을 깨우는 사탕을 전해받으며
다음에 우연히 또만나게
되길 바라며 우린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며
한팀은 북쪽으로
한팀은 남쪽으로 발길을 향한다
황악산에서
삼성산 가는길에
신선봉갈림길에서
주의를 요하지 않으면
자칫하면 알바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간길은 바람재 방향으로
우측길로 틀어서 진행해야 했다
그렇게 바람재에
도착이다
바람이 많아 바람재라 부른다고 하더니만
오늘은 바람은 온데 간데 없다
추풍령에서
반사경에 찍은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던데
바람재에서의 설명판에
비쳐진
내모습의 사진이 나름 멋지다
요 사진은 기억에 많이 남을듯 하다
아직 대간길은
봄과 겨울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겨울의 흔적들..
바람재에서 1시간 20분여
걸어오니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삼성산에 도착이다
아마도 대간꾼 쉬어가라고
벤취를 마련해 놓은듯 하여
우리도
이곳에서 마지막
휴식을 맘껏 즐겨본다
삼성산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40분경이다
산행시작후 13시간이 흘렀는데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어
우리들의 발걸음이 참으로 빠름을
느껴본다
이제 우두령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그래!!!
대간은 이렇게 한구간 시작하면 끝이 보이는 거야 하며
서로에게 위로를 해 가며
오늘도 머나먼 길을
할께 할수 있는
우리팀들이 있기에
행복했노라고 말하리라
삼성산에서
40분여 내려서니
오늘의 끝지점 우두령에 도착이다
소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우두령이라 불리운다는 우두령~~
상징물도 튼실한 소한마리!!!
그렇게 13시간 40분여 만에
오늘 19구간을 마무리 해본다
이제 어느덧
백두대간 남진도 3구간만이 남아 있다네~~
사람은 누구나 나를 비롯하여 자기가 보고 싶은
방향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를 위해 운전해 주시는 기사분의 말씀 한마디에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누군가로 부터 받은 사탕을
나는 운전하시며 혹시 졸리울때 드시라고 전해 드렸었다
그런데 이렇게 고급스런 사탕은 처음 받아 본다고 하면서
오늘이 사탕받는 날이었다는 것도 처음 아셨다며
너무 좋아라 하시던 그분의 모습에
어찌보면 하찮은 것에 불과 할지도 모르나
작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계심을 느꼈었다
나는 작은 소중함들은 잊은채
큰것만을 바라보며 살아오고 있었던것은 아닐런지.....
산행일시 : 2015년3월14일(토)
산행구간 : 작점고개→추풍령→눌의산→ 괘방령→황악산→삼성산→우두령
산행거리 : 약 31.5km
산행시간 : 13시간 40분
날 씨 : 맑음
함께하신분 : 황금송님,된비알님,천리향님,봇대님,또치님,노래님,포비님,장미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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